교실에서 배운 영어보다, 교실 밖에서 배우는 영어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친 지 꽤 되었다.
내 나름대로는 시대 흐름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학생들과 잘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수업 중 한 학생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쌤, 그거 개 cringe예요.”
나는 순간 멈췄다.
뭐가 cring하다는 거지?
그게 나라는 건가? PPT인가? 내 발음인가?
그날 이후, 나는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학생들은 어떤 언어를 쓰고 있고, 그 속에 어떤 세계가 담겨 있는지.
Z세대의 영어는 교과서에 없다
요즘 학생들은 영어를 책이 아니라, TikTok, Shorts, 밈(Meme)에서 배운다.
들의 영어는 우리가 학창시절 외웠던 것과 완전히 다르다.
예를 들면 이런 말들이다:
- cringe: 오글거리거나 민망할 때
- slay: 너무 멋지다, 잘했다
- sus: 수상하다 (suspicious의 줄임말)
- NPC: 존재감 없고 기계적인 사람
- rizz: 매력, 말빨
- sigma male: 자기 중심적이고 독립적인 남성상 (좋게 말하면 쿨, 나쁘게 말하면 자기애 과잉)
이 표현들은 유튜브와 인스타 릴스, 그리고 짧은 영상 콘텐츠에서 순식간에 퍼지고,
이미 교실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일상 대화의 일부가 되고 있다.
교과서에는 여전히 “May I go to the bathroom?”이 나오지만,
학생들은 “I need to pee fr (for real)” 이라고 말하고 있다.
선생님은 가르치는 사람일까, 배우는 사람일까
나는 처음에 이런 신조어들을
‘정제되지 않은 말’, ‘공식적인 영어가 아닌 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느낀 건,
이 언어는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아주 ‘실용적인 영어’라는 것이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문화적 맥락 속에서
미묘한 감정, 태도, 유머를 영어로 표현한다.
어쩌면 우리가 시험을 위해 외운 단어들보다
이들이 쓰는 단어가 더 생생하고 살아있는 영어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은 학생들에게 묻는다.
“cringe는 어떤 상황에서 쓰는 말이야?”
“rizz는 언제 생기는 거야?”
처음엔 학생들이 웃지만, 내가 진심이라는 걸 알면
놀랍게도 굉장히 진지하게 설명해준다.
그때 깨달았다.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배우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을.
언어는 살아 있다 – 그리고 세대도 함께 바뀐다
Z세대는 텍스트보다 영상에 더 익숙하고,
문법보다 맥락을 더 중시한다.
그들의 영어는 짧고 빠르고, 감정이 뚜렷하다.
“OMG so cringe LOL”처럼 모든 게 줄임말이고 감탄사다.
하지만 그 안에 정확한 의미가 있고, 그들만의 언어 감각이 있다.
우리가 이걸 ‘틀린 영어’라고만 보기보다는,
새로운 언어 흐름의 일부로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
물론 정식 영어 시험이나 평가에서는
이런 표현이 맞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교실은 단지 시험을 준비하는 곳이 아니라,
소통의 방식을 배우는 공간이기도 하다.
마치며 – 웃으면서 같이 배워가기
그날 학생이 “쌤, 개 cringe예요”라고 했을 때,
나는 살짝 당황했지만, 동시에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왜냐면 그 말 안에 ‘친근함’과 ‘소통의 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늘 우리보다 앞서 나간다.
그리고 그걸 따라잡으려고 안간힘 쓰기보다,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그 속에 담긴 생각과 문화를 이해하려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즘도 가끔 수업 중 누가 “slay~” 하면
나도 장난스럽게 “쌤 오늘 drip 터졌지?” 하며 받아친다.
물론 학생들은 “아 쌤 그건 안 돼요… 너무 cringe예요 ㅋㅋ”라며 웃는다.
그래도 좋다.
우리는 지금, 서로의 언어를 배우는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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